병과 의약생활로 본 정약용의 일생The Life of Cheong Yagyong in Terms of the Perspective of Illness and Medi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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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학자인 정약용의 생애를 병과 의약 생활이라는 측면에서 관점에서 살핀다. 현재까지 그의 삶은 천주교신앙으로 인한 고난과 박해, 그의 저술에 나타나는 실용적, 민중적, 애국적 요소에 주로 관심을 보여 왔다. 그런 가운데 정약용의 삶과 학문에 대한 연구는 자주 냉철함을 잃어 객관성을 결여할 때가 많았고, 대학자의 인간적인 삶과 학문적 성과를 나란히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와 달리 이 논문에서는 그의 일생을 일상과 정감이라는 관점에서살피고자 하며, 보편적 인간 누구나 겪는 병과 노쇠, 이에 대응하는 의약의 행적을 추적한다. 그것은 세 가지 차원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정약용의 출생에서 사망까지 일생 동안 앓은 병의 흔적을 더듬어 알린다. 둘째, 정약용에 대한 병고와 노쇠에 나타나는 신체적, 사회적 존재로서정약용을 드러냄으로써 그의 삶과 학문에 대한 인물사적 이해의 지평을 넓힌다. 셋째, 의약이 그의 삶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했는지를 밝힌다. 정약용이 어렸을 때 천연두와 홍역을 무사히 극복한 이후 이에 필적하는 병을 앓지는 않았으나, 40세 무렵부터 어깨와 손의 마비되는 고질이 나타나고, 늙어서는 다리까지 불편해지는 악화 과정을 겪는다. 정약용은 스스로 낫지 않는 고질을 푸념하면서 연구를 했고, 연구를 함으로써 정신 집중이 가능해진 동시에 삶의 의욕을 불태울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스스로 의약을 배워 자신의 병을 관리하고 여러 방법을 통해 건강을 지켜내려 했다. 몸은 병과 노쇠를 겪는 주체인 동시에 그의 학문을가능하게 한 토대였으며, 몸과 병을 관리하는 건 매일매일 실천해야 할일상이었다. 유배 기간 중 그는 230여 권이라는 유교 경전을 종합하는저술을 남겼고, 이에 못지않게 의약에 대한 수준도 높아졌다. 그렇지만늙어갈수록 그는 의약이 자신의 고질을 낫게 해주지 못함을 깨닫는 한편, 정치적으로도 재기하지 못함을 운명으로 여겼다. 오로지 자신의 학문이 훗날 인정받으리라는 염원으로 생을 지탱했는데, 그의 소망과 달리 당시 조정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그의 학문을 인정하기보다는 그의 실용적인 의술을 제공받고자 그를 찾았다. 결론적으로, 그의 인생에서 의약이란, 그것은 자신의 보통 병을 다스리고, 그를 칭송케 해준 존재인 동시에 자신의 고질을 고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였고, 그가 원치않는 명성을 덧 씌어준 존재였다.
Publisher
재단법인다산학술문화재단
Issue Date
2013-06
Language
Korean
Citation

다산학, no.22, pp.259 - 328

ISSN
1598-8856
URI
http://hdl.handle.net/10203/201595
Appears in Collection
HSS-Journal Papers(저널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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