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시전인과 공인의 병존 관계- 지전-지계, 진사전-진사계 사례를 중심으로 -The Compatibility and Intersection between Sijeon (市廛) Merchants and the Gongin (貢人) in the Late 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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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후기 서울 거주민의 근간으로 인식되었던 시전인과 공인의 병존양태와 교집합의 발생과정을 분석하였다. 특히 같은 물종에서 시전과 공계가 공존했던 사례로서, 紙廛과 紙契 그리고 眞絲廛과 眞絲契를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국초부터 도성의 기초적 상업기구로 배치되었던 시전과 대동법 시행 이후 공납 대행자로 인정되었던 공인은, 그 원형에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시전이 공인권을 획득하는 사례가 늘어가고 공인 역시 시전과 유사한 조직을 갖추면서 시전인과 공인의 구분은 점차 모호해졌다. 정부도 이들을 ‘공시인’으로 통칭하며 양자에 대한 정책도 일괄적으로 진행하였다. 지전과 지계는 17세기 말 元貢을 作貢할 때부터 함께 공인권을 얻은 경우에 해당된다. 지계와 지전의 공인권 분담 비율은 최종적으로 2:1로 정착되었다. 지전은 산하에 방물지계를 두어 운영하였으며, 외부의 삼남방물지계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松商에 대해서는 지전과 지계 양쪽 貢市人이 공동으로 대응하기도하였다. 지전은 공인들에게 자금을 대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으며, 19세기 중반 지계가 부채 속에 혁파되었을 때에도 이를 이관 받게 되었다. 한편, 진사전과 진사계는 19세기 중반까지 각각의 독립적인 영역에서 각각 시전과 공계로서 존재하였다. 진사전은 각색 실·끈·띠 일반을 취급하며 공인권없이 순수한 시전으로 남아있었다. 1778년에 창설된 진사계는 御衣襨에 쓰는 白 絲를 연경으로부터 수입해오는 역할을 전담하는 공인계로서 진사전과 큰 충돌이없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진사계가 해산되자 그 역할은 결국 진사전에 이관되었다. 즉 상호 독자적으로 운영되었던 진사전과 진사계의 조직도 상호 교체될 수있을 정도의 유사성을 지녔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조선후기 시전인과 공인은 관수물자의 조달과정을 맡아하는 관허상인으로서 병존하며 상호 중첩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전과 공인의 동시적 변화는 기존에 정부에 의해 편성되었던 상업기구와 공납체계의 본래적 모습이 현실적 문제에 당면하여 어떻게 변형되어갔는지를 보여준다.
Publisher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Issue Date
2018-11
Language
Korean
Citation

서울학연구, no.73, pp.1 - 35

ISSN
1225-746x
DOI
10.17647/jss.2018.11.73.1
URI
http://hdl.handle.net/10203/262068
Appears in Collection
RIMS Journal Pa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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