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포스트휴먼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묻는 대신 사람들이 포스트휴먼이라고 부르는 존재가 우리 앞에 또는 한 사회에 어떻게 등장하는지를 검토한다. 2016년 3월 서울에서 열린 이세돌-알 파고 바둑 대국과 2016년 10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사이배슬론 대회 현장을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일회성 이벤트로 처음 등장한 포스트휴먼이 그 현장의 국소적인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사회 속으로 진입하여 자리를 잡으려 할 때 벌어질 일들을 가늠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이 글은 17세기 영국 왕립학회에서 실험적 사실이 등장하는 과정을 분석한 스티븐 섀핀과 사이먼 섀퍼의 과학사 연구 관점을 활용한다. 포스트휴먼을 구성하는 ‘물질적 기술’, 포스트휴먼 등장의 의미를 숙고하는 ‘언어적 기술’, 그렇게 등장한 포스트휴먼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와 제도를 구성하는 ‘사회적 기술’은 어떤 자격의 포스트휴먼을 등장시킬 것인지를 협의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이 글은 우리의 관심을 포스트휴먼의 기술적 역량(알파고의 바둑 실력, 사이배슬론 선수의 운동 능력)에 대한 전망에서 포스트휴먼의 사회적 가능성에 대한 비판적 검토로 옮길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