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성 시인 사로지니 나이두(Sarojini Naidu, 1879~1949)는 타고르와 함께 서양에서 인정 받은 동양의 시인으로, 혹은 1930년 간디와 함께 소금 행진을 이끈 인도의 정치인으로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 소개되었다. 인도를 대표하는 두 인물 타고르와 간디와 나란히 섰던 여성이라고 하는 독특함 때문에 나이두는 식민지 조선에서 외국 여성 시인으로는 드물게 주목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이미 나이두가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고 간디가 주도하는 정치운동에 투신한 이후에 식민지 조선에 소개되었기에 나이두는 소개자의 입장에 따라 한 편에서는 시인으로서의 면모에, 다른 한쪽에서는 정치인으로서의 면모에 좀 더 주목하는 방식으로 소개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나이두와 나이두의 문학이 시기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는 맥락을 드러내고 통일적 이해를 시도한다.
1920년대 초반 김억이 시인 나이두에 초점을 맞추고 서정시에 집중해서 소개한 다음 1920년대 중반에는 억압 받는 민중을 위한 신경향파 문학의 한 예로 나이두의 시가 소개되었다. 1930년 전후해서는 정인섭과 이하윤이 정치가로서의 나이두에 초점을 맞추고 인도민족주의의 목소리를 직접 드러내는 시를 소개하는 데 힘썼다.
이렇게 ‘정치적으로는 민주적 민족주의이지만 미학적으로는 봉건적’이었던 나이두의 문학과 정치 활동은 한동안 모두 낡은 것으로 치부되어 왔지만 진부한 낭만주의로 평가되던 나이두의 시와, 간디의 가부장적 민족주의를 선전하는 연설가 정도로 평가되던 나이두의 정치활동은 민중과 호흡하기 위해 민중에게 익숙한 노래의 형식을 추구한 것, 인도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줌으로써 지배자에 저항할 수 있는 긍지를 갖게 한 점, 여성의 교육과 투표권 문제에 적극 개입한 것, 힌두-무슬림의 연대를 적극 주장한 점 등에서 재평가될 수 있다.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번역 소개자 중 사회주의 여성운동가였던 허정숙은 나이두 시의 이런 측면에 대한 이해를 선취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