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정치가로서 이인직의 위치와 합방 정국에서 그의 역할 The Position of Lee Injik as a Pro-Japanese Politician and His Activities in the Period of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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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로서 이인직이 친일 노선을 견지했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한일합방을 전후한 시기, 현실 정치에서 친일은 단일한 정치 노선이 아니었다. 똑같이 친일파로 분류되는 정치 세력도 한국 주차 일본군과 결탁한 일진회 세력과 통감부의 지원을 받은 이완용 내각이 치열한 권력 투쟁을 전개했다. 이 글에서는 이인직이 친일 정치 세력 내부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했는지, 그가 왜 합방 정국에 개입했고, 어떠한 논리로 합방을 정당화했는지 살펴보았다. 이인직은 똑같이 친일의 범주에 묶이지만, 현실 정치의 관점에서 상극의 정치 집단이었던 일진회와 이완용 내각, 두 정치 집단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의 신소설에 나타난 이인직의 한국 인식은 양반 관료의 부정부패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본의 세력을 끌어들여 ‘양반 내각’ ‘문벌 내각’을 붕괴시키고 ‘민당(民黨)’의 집권을 도모한 일진회의 인식에 이어지지만, 정작 그는 일진회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이완용 내각의 홍보 책임자 역할을 담당했다. 일진회의 합방청원 이후에는 이완용을 대리해 국내에서 합방 반대 운동을 벌이고, 이완용의 밀명을 띄고 도일해 일본에서 여론 몰이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의 후진성의 근본 원인이 ‘관리의 폭염’에 있음을 논설과 신소설을 통해 통렬히 비판하던 이인직이 1907년 이후 황실과 양반 계급에 대해 우호적으로 바뀐 것은 그 시기 그 자신이 한때 통렬히 비판했던 권력의 핵심과 연결되었고, 또한 그가 비판한 것은 ‘관리의 폭염’이었을 뿐, 양반 계급 그 자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 친분, 욕망과 이해관계를 제외하고 일진회에서 이완용 내각으로 이인직의 전향을 설명해줄 거의 유일한 내적 동력은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의 서얼 가계라는 양반 계급 내에서 그가 차지한 독특한 신분적 위치 정도이다.
Publisher
한국현대문학회
Issue Date
2010-08
Language
Korean
Citation

한국현대문학연구, no.31, pp.3 - 33

ISSN
1229-2052
URI
http://hdl.handle.net/10203/97751
Appears in Collection
HSS-Journal Papers(저널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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